세월따라


無我



누가 내게 '당신이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주고 갈 말이 무엇이냐?

고 묻는다면 '무아(無我)'라는 두 글자입니다.

두번째 세번째 역시 내가 세상에 두고 가고 싶은 말은

'無我'라는 두 글자뿐입니다.

모두가 '나, 내 것, 내 자식 것' 한다면

이 세상은 결국 망하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생각하며 '우리, 우리 것, 우리 자식 것' 한다면

이 세상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至人無己 :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神人無功 : 신의 경지에 이른 자는 공을 드러내지 않으며,

聖人無名 : 성인의 경지에 이른 자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느니라.



이 곳에 무(無)자 대신에 자아(自我)를 넣게 되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無我'가 세상을 다스려야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 "세상을 바꾼 가르침" 중에서 -







생각하며


로그인

난치병 환자 고통 치유해 줄 자비의 인술
대운  2005-07-18 15:42:50, 조회 : 8,590, 추천 : 976


[특별기고] 불교 가르침에 비춰 본 ‘줄기세포 연구’

“난치병 환자 고통 치유해 줄 자비의 인술”

불교에선 ‘수정란에 중음신 깃들어야 생명체’인식

환자 체세포로 줄기세포 만들어 면역거부도 해결


사진설명: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는 타인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자비의 실천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진은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연구원들.
21세기 세계 의학계의 화두는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재생의학이다. 줄기세포는 인체의 모든 장기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척수장애, 암, 뇌질환 등 난치병과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꿈의 치료제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그 과정에서 하나의 생명체인 인간배아를 파괴하는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배아에 대한 연구, 특히 줄기세포를 추출하여 활용하고자 하는 연구는 그 배아의 죽음을 전제로 한다. 배아의 도덕적 지위가 온전한 인간과 동일하다면 어떤 경우에도 배아를 활용한 연구나 배아조직의 사용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따라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적 쟁점들은 인간 개체의 생명이 언제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불교의 입장에서, 즉 불교의 태아관과 인간관을 통해 보면 배아연구는 비판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불교에서는 본유(本有)로 불리는 인간의 일생을 우선 태내(胎內)와 태외(胎外)로 크게 나누고 또 각각 몇 단계로 그 변화과정을 세분하여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인간 일생의 변화과정 가운데 태내 즉 모체에서의 발달단계에 대한 문면을 검토하면 불전(佛典)의 태아관을 고찰할 수 있다.

불전의 문면을 검토해 보면 원시불교시대에는 태아의 발달을 단계별로 나누지 않고 총괄하여 다루고 있으며, 후대에는 4기.5기.8기 등의 발달단계설로 설명하는가 하면 임신기간 38주를 각각 1주 단위로 나누어 설명한 경전들도 등장한다.

이 가운데 8기설은 ①카라라(Kalala)기 ②아르부다(Arbuda)기 ③페시(pei)기 ④가나(Ghana)기 ⑤프라사카(Prakh)기 ⑥발모조위(髮毛爪位)기 ⑦근위(根位)기 ⑧형위(形位)기로 모체에서 태아의 발달단계를 8과정으로 나눈 것이다.

이 가운데 카라라기는 수태로부터 일주일 동안의 태아를 말한다. 불전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화합하여 엉김으로 인해 태내의 생활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수태직후인 이 태아에 대해 〈수행도지경〉에서는 “더하거나 감하지도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다” 고 표현함으로써 발육을 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불설포태경〉에는 “머물러 증감이 없고 차츰 뜨거워지며 더욱 견고해지면 곧 지종(地種: 뼈.손톱 등의 고체성분)이 되고, 그 부드럽고 습한 것은 수종(水種: 혈액.호르몬 등의 액체성분)이 되며, 그 중에 따뜻한 것은 화종(火種: 열에너지로 표현될 수 있는 구성요소)이 되고, 그 가운데를 관통하면 풍종(風種: 운동에너지로 표현될 수 있는 구성요소)이 된다”고 표현함으로써 발육보다 내면의 질적인 변화를 그리고 있다.

현대 발생학에서도 이 시기는 크기의 증가 없이 세포분열만이 이루어져 질적 변화만이 일어난다고 하니 불전의 내용과 부합된다고 하겠다.

아르부다기는 제2주의 태아를 말한다. 이 시기의 태아의 형상은 마치 엉긴 타락죽과 같이 표현한 것이 많으며, 〈불설포태경〉에서는 “그 몸에 모여 포가 되는데 그것은 마치 타락 위의 기름과 같으며 그 정이 더욱 굳어진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현대 아동학에서는 수태 후 1주와 2주의 태아를 배란(ovum)이라고 부르는데, 자궁벽에 착상하기 이전의 단계로서 세포분열을 계속하면서 착상 준비를 위해 떠다니는 시기이다.

페시기는 제3주의 태아를 말한다. 이 시기의 형상은 마치 “쇠 젓가락 또는 지렁이 같다”고 묘사함으로써 더욱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현대 아동학에서 볼 때 이 시기부터를 태아(embryo)라고 하듯이 자궁에 착상한 직후의 모습인데 이 시기를 초육(初肉)이라고 했음도 예사롭지 않다.

현대적으로 볼 때에는 수태 후 2주째부터 이 시기까지가 태아기로서 신체 각 부분의 95%가 형성되며 크기도 수정란의 약 2만 배나 되는 왕성한 성장발달시기이다. 또 손가락과 발가락의 형체가 갖추어짐도 이 시기인 만큼 불전의 내용과 상당히 부합된다. 또 실제로 사람다운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라고 하니 역시 현대과학과 부합된다고 하겠다.

불교의 인간관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색온(色蘊)이다. 색(色)이란 형태와 색채를 한 가지로 묶어버린 의미로서, 시각대상계인 색경(色境)뿐만 아니라 성(聲).향(香).미(味).촉(觸)과 더불어 유정고체(有情固體)의 생존을 구성하는 감각적.물질적 요소 전부와 감각적 인상을 일으키는 운동변화의 전체를 가리킨다.

둘째는 수.상.행.식의 정신활동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색(色)이라는 육체와 더불어 수(受).상(想).행(行).식(識)의 정신활동을 갖는 존재로 파악하는데, 의학적으로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수정된 2주도 안된 배아가 그런 정신활동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서 배아는 인간의 가능태이지 인간자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인간관의 입장에서도 엄격한 조건하에서 배아복제는 허용될 수 있다.

말 위에서 떨어져 척수장애인이 됐던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는 2004년 숨지기 전 황우석 교수가 세계최초로 인간 체세포 복제를 통해 배아줄기 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리브는 “나는 황 교수의 복제기술 혜택을 볼 수 없을지라도 많은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생명복제 연구가 허용돼 장애의 고통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난치병을 고쳐야 한다는 절박감은 어디 리브만의 심정이겠는가. 우리 모두의 희망이다.

황교수가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이어 또 다시 세계 최초로 실제 환자의 체세포를 복제해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데 성공한 것은 한국 과학의 쾌거일 뿐만 아니라 질병의 고통에서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쏘아 올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척수장애, 파킨슨, 알츠하이머, 뇌졸중, 당뇨 등 난치병을 고칠 수 있다면 이보다 인류에 더 공헌하는 일은 찾기 어렵다.

이번 황 교수의 연구가 주목받는 것은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에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기 때문에 면역거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텄다는 점이다. 특히 2세에서 56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체세포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남녀노소 모두 배아줄기세포를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환자의 몸에서 체세포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연구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인 면역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길을 제시했다는 의미에서 이번의 황 교수 연구는 엄청난 뜻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004년도 황 교수의 연구발표의 평가에 인색했던 외국의 학자들조차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업적이라고 찬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황 교수의 연구도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황 교수의 연구성과에 임상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환자로부터 유래된 줄기세포가 체내에 주입될 경우 같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또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병원균에 노출되는 위험성을 차단하는 것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 배아복제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사회적 합의도 나와야 한다. 그리고 황 교수도 연구윤리를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사견임을 전제로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첫째, 반대론자들은 난자와 정자의 결합 순간을 생명으로 보면서 배아복제연구를 생명 파괴로 보고 있다, 기독교와 가톨릭 입장과 여기에 찬성하는 생명윤리학자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난자와 정자의 결합체인 수정란에 영혼이 깃들어야만 생명체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더 연구하고 생각해야 한다. 불교에서도 난자와 정자가 결합하고 중음신이 깃들여야만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14일 미만의 수정체를 인간생명으로 보아야 할 지 세포 덩어리로 보아야 될지 의학자와 생물학자 종교가 생명윤리학자 등이 모여서 좀 더 진지하게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불교의 태아관과 인간관을 통하여 수정된 지 14일미만 된 배아세포연구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 불교의 인간관에서 찬성할 수 있다고 본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존재로 본다. 특히 정신적인 존재를 강조한다. 그런데 수정 된지 14일 미만 된 배아가 정신활동까지 한다고 보는 것은 좀 더 의학적으로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어려울 것 같다. 다시 말해 배아는 인간의 가능태이지 인간자체라고 보기 어렵다.

불교의 수태관에서도 앞서 고찰한 것처럼 부처님께서는 생명과 인간의 시작을 어머니의 ‘자궁속에서’를 강조하고 있다. 시험관속에 있는 수정란은 불교의 수태관에서 보면 생명의 시작도 인간의 시작도 아니다.

셋째, 종교의 근본정신에서 허락되어야 한다고 본다. 불교의 자비정신, 기독교의 사랑과 유교의 인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그 고통을 제거하는 정신이다. 배아줄기세포의 연구를 통하여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과 불임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 본인과 가족의 고통까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고통이기도 하다. 그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의학과 종교가 해야 할 일이다.


황우석 교수는 지금 이순신 장군 이후의 영웅으로 혹은 일부 종교학계에서는 악마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황 교수는 영웅도 아니고 더더구나 악마도 아니다. 난치병 치료를 위한 비원을 가지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한 사람의 불자에 지나지 않는다.

곽만연/동아대 인문학부 교수

※특별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출처] 불교신문 제2141호/ 2005년 6월 28일자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97  길 잃은 그대를 향해 빛을 들고 있는 별 하나    大雲 2005/08/14 1101 9855
96  [경천사 10층석탑] 657년전 선조들은 도대체 어떻게 쌓았을까    大雲 2005/08/12 1030 8834
95  진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무지개가 아니라 ...    大雲 2005/08/10 1052 9034
94  무상 (無常, Impermanent)    大雲 2005/08/09 1556 9862
93  [템플스테이] 전나무 숲에서 삼보일배하다    大雲 2005/07/29 1396 9690
92  두 불상 1000여년전 왕실연인들의 애정 깃든 커플 불상일까    大雲 2005/07/21 1040 8889
91  [사랑밭 새벽편지] 황우석 교수와의 만남    대운 2005/07/19 1254 11345
 난치병 환자 고통 치유해 줄 자비의 인술    대운 2005/07/18 976 8590
89  수술칼 만들면 살인범인가    대운 2005/07/06 1026 9127
88  잠깐, 삶을 내려놓으세요 <템플스테이>    대운 2005/07/05 951 8273

     [이전 10개] [1]..[41][42][43] 44 [45][46][47][48][49][50]..[53]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zero

|누구일까|QSL카드|사진앨범|내고향|친구들|인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