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따라


無我



누가 내게 '당신이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주고 갈 말이 무엇이냐?

고 묻는다면 '무아(無我)'라는 두 글자입니다.

두번째 세번째 역시 내가 세상에 두고 가고 싶은 말은

'無我'라는 두 글자뿐입니다.

모두가 '나, 내 것, 내 자식 것' 한다면

이 세상은 결국 망하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생각하며 '우리, 우리 것, 우리 자식 것' 한다면

이 세상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至人無己 :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神人無功 : 신의 경지에 이른 자는 공을 드러내지 않으며,

聖人無名 : 성인의 경지에 이른 자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느니라.



이 곳에 무(無)자 대신에 자아(自我)를 넣게 되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無我'가 세상을 다스려야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 "세상을 바꾼 가르침" 중에서 -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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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애플’은 어디 있나요 Steve Jobs@iHeaven
大雲  (Homepage) 2011-10-21 12:04:52, 조회 : 3,599, 추천 : 457



스티브 잡스와 선()



[출처] 2011년10월10일 방영 - 불교TV (BTN) 세계불교




당신의 ‘애플’은 어디 있나요

[매거진 iesc] 커버스토리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 죽음을 결국 경험했습니다.

나는 이제 헌것, 과거가 되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행복합니다. 소크라테스를 드디어 만났습니다. 내 모든 재산을 털어서라도 만나고 싶었던 그와 대화를 하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위대한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채석장에서 돌 자르는 방법에 대해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던 미켈란젤로도 결국 만났습니다. 위대한 선승들과 차를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로 또다른 나를 채워가고 있습니다. 마침 일주일 뒤 이곳으로 온 C언어의 창시자 데니스 리치 덕분에 이야깃거리가 더욱 풍부해졌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여전히, 매일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수다를 좀 떨고 나면 떠오르는 아이디어 탓에 여기서도 잠 못 이룰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극락세계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줄 물건들이 떠올라 나를 괴롭힙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극락에도 한 방 먹이고 싶지만…. 행복하면서도 괴로운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내 아이디어를 최고의 제품으로 만들어 줄 친구들이 없어서죠. 그것을 이리저리 만져보고는 흥분한 목소리로 “바로, 이거야!”라고 외치며 환호해 줄 당신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모든 욕심을 버려야 할 때겠죠. 그래도 점들이 이어져 선이 만들어지고, 선들이 모이고 모여 면이 되고, 면들이 모여 공간을 이루고, 공간과 공간이 시간으로 매개되어 또다른 세계로 뛰어들어가리라는 믿음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과연 당신들은 나를 계속 기억할까요? 기억하지 않는다 해도 속상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열정과 에너지는 지나간 사람에게 쏟을 만큼 무가치하지 않으니까요. 100년이 지나도 기억될 인물이라고 낯간지럽게 치켜세우지 말길 바랍니다. 그보다는 당신 자신들에게 집중하십시오. 이미 당신의 마음과 직관이 알고 있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는 데도 시간은 부족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우주는 얼마나 멋진 곳인지 모릅니다. 이제 곧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되어 떠나려 합니다. 나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여기 왔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내가 여기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맨발로 정처 없이 순례자의 길에 나설 것입니다. 이렇듯 나는 죽음 뒤의 경험과 변화를 즐기고 있습니다.

기회는 주어졌습니다. 변화는 시작되었고, 헌것은 새것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나를 영웅으로 불러주는 당신, 당신이 이제 영웅이 될 차례입니다.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될 겁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까요.

극락에서 편히 쉬고 있을 스티브 잡스를 상상하며…

▣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20일 / 한겨레매거진 Esc





옛일은 잊어요, 앞을 보고 걸어가요

i극락에 있는 스티브 잡스와 만났다…페이스타임 가상 인터뷰


스티브 잡스. 그를 꼭 만나보겠다고 무작정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태평양을 건넌 사람도 있었다. 이젠 그러려면 태평양이 아니라 황천길 지나 요단강이라도 건너가야 할 판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그가 남기고 간 페이스타임(애플제품의 영상통화 기능)이 있지 않은가. 질문은 아이폰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누리꾼들한테 모았다. 독하고 직설적이고, 따뜻하고 현명한 질문들을 골라 가 대표로 페이스타임을 날린다. 자~ 가상 인터뷰, 시~작!

→당신이 떠난 지 벌써 보름이네요. 역시나 한국에서는 엄청난 일이라도 난 것처럼 와글와글하다가 당신을 벌써 잊은 듯해요. 그곳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안부는 묻고 시작하죠. 어때요? 잘 지내고 있나요?

“여긴 극락이에요. 뭐 천국이라고 해도, 아이헤븐(iHeaven)인 것은 같군요. 아직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데, 저마다 가는 곳이 다른가봐요.”

스티브 잡스가 페이스타임으로 주변 곳곳을 비춰준다. 줄지어 선 이들은 불안과 설렘이 뒤섞인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잡스는 최종 목적지도 모르면서 별 걱정이 없어 보였다. 인도 수행자를 쫓아다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이곳을 벗어나게만 해주면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기도했다던데, 그 때문일까?

▲ 1984년, 스티브 잡스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도입한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를 세상에 선보였다. 사진 AP 뉴시스
“몸의 고통은 사라졌지만, 아직 얼떨떨하긴 해요.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거든요. 지구에서 ‘우주에 한 방 먹일 것(1980년대 애플 개발팀 독려를 위해 즐겨 쓰던 말)을 제대로 만들려면 좀 더 일을 하고 왔어야 했는데…. 한편으론 괴롭기도 하고요. 여기저기서 절 원망하는 사람들이 내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더라고요. 폭스콘(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으로 아이폰을 생산하는 중국계 기업.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2010년 노동자 14명이 투신자살했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중국어로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죠. 그저 난 ‘아임 소리’라고 할밖에요.”

솔직히 별로 난처한 표정은 아니다.

→ 잡스, 당신한테 사과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죠? 삼성전자 같은 업체들을 카피캣(모방 제품 만드는 기업)이라 비웃었지만, ‘있던 것 잘 포장해 만들었을 뿐인 당신과 애플이 진짜 카피캣 아니냐’고 여겼던 사람들요.

“한마디만 할게요. ‘이것은 원맨쇼가 아니다.’”(1998년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 중)

잠깐 화가 난 듯 잡스의 얼굴이 구겨지더니 다시 숭고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원맨은 저이기도 하지만, 애플의 제품 하나하나이기도 해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튠스…. 저는 떠나왔지만, 애플의 직원들과 더 나아가 애플의 제품을 사랑하는 소비자들은 어떤 사람들보다 중요하고 위대하죠. 그리고 애플에서 만들어 온, 그리고 만들어 갈 제품들이 모여 ‘하나의 우주’를 형성할 거예요. 그게 바로, 우리가 카피캣이 아닌, 그리고 원맨쇼가 아닌 이유죠.”

우주에 한 방 먹이려고 했는데…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이야
→ 사과를 한다는 사람들이 몇가지 질문이 더 있다는데요… 그쪽엔 맛집 괜찮은 데 없냐는…

잡스는 그런 것 따위에 관심 없다며 두리번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견과류와 물만 먹었다고 한다. 먹을 것 묻는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못 말리는 워커홀릭의 기가 막힌 대답.

“채식 레스토랑 괜찮은 곳이 있다고 하던데…. 극락 맛집 애플리케이션도 만들어야겠군. 개발자들이 이쪽에도 좀 있으려나. 에이(A)급 인재가 필요한데 말이야. 에이급!”

→ 아, 그 이야기도 좀 해보죠. 에이급 인재만을 숭앙했던 당신. 당신의 그 독단적이면서도 차가운 품성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가요? 그 품성을 혁신할 생각은?

“‘우리는 우리의 비전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1984년 매킨토시 발표에서)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없어요. 우리의 비전, 제품, 소비자가 최우선이죠. 나의 인성과 품성에 대한 평가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나는 애플 초창기에 직원을 뽑을 때 두가지를 물었어요. ‘환각제는 몇 번 했냐?’, ‘언제 첫 성관계가 있었냐?’고요.”

이 사람 변탠가? 환각제는 그렇다 치고, 성관계는 그야말로 프라이버시 중 최고의 프라이버시 아닌가. 더구나 여성한테 ‘첫 경험’ 운운한 사장이 있다면 <한겨레> 사회면 머리기사감이다.

“내가 호감이나 사려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건 묻지 않았겠죠. 순발력 뛰어나고 겁 없는 인재를 찾으려고 물은 거예요. 근사하고 매너 훌륭하고, 인품 고상한 사람 되려고 했다면 노력해서 그렇게 됐겠죠. 하하하. 하지만 난 그런 거 흥미 없어~. 나의 비전에 모든 것을 걸고 매진했을 때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잡스의 솔메이트, 혁신과 창의의 뜻을 함께하던 조너선 아이브가 잡스한테 상처받았다는 건 뭔가. 애플의 수석디자이너이자 부사장인 조너선 아이브는 잡스의 공식 전기에 아픈 속내를 털어놨다. “잡스가 나의 창의성을 자기 것처럼 얘기할 때 깊은 상처를 받았어요. 잡스는 강단 위에서 모든 게 자신의 창의력에서 나온 것처럼 연설했어요. 나는 관객석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죠. 그 모든 생각과 아이디어가 적힌 내 수첩을 손에 쥔 채로 말입니다. 때로는 몸에서 가시가 돋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어요”라고.

화가 나서 울 때도 있었지만 당신들 덕분에 두려움 이겨냈죠
아이브 이야기를 꺼내자 잡스는 갑자기 심각해졌다.

“아이브가 원래 욕실 디자이너였다는 건 알죠? 물론 그가 상처받았다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디자인만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나요? ‘사람들은 디자인을 겉치장으로만 생각하죠. 우리는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은 ‘어떻게 기능하는가?’의 문제죠.’”(2003년 <뉴욕 타임스> 인터뷰)

거참, 이 사람한텐 죄책감이란 없는가 보다. 천재란 이런 건가. 아이브 역시 가시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그를 존경한다고 털어놓았으니. “잡스가 끊임없이 일을 추진해 주고 여러 압력을 막아 줬기 때문에 애플 제품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아이디어들은 다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을걸요”라고 말이다.

▲ 맥월드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스티브 잡스.

→ 역시나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군요. 이룬 것은 많지만 떠나기 전엔 고독하지 않았나요. 그런데도 병마와 싸워가며 일을 손에서 놓지 않은 건 참 대단하달 수밖에 없는데, 역시 비전이 병마의 고통을 견디고 일하게 한 건가요?

“내가 일을 계속했다고요? 누가 그런 소리를… 마케팅 쪽에 입 맞춰 놓는다는 걸 깜빡했네.”

아니, 이건 뭔가. 아이폰5는 물론이고 앞으로 4~5년치 제품은 기대할 만하다는 말은 호사가들의 공상이었단 말인가.

“어떻게 일을 계속할 수 있었겠어요. 얼마나 아팠는데. 하지만 ‘옛날 일은 잊어버려야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을 보고 걸어가려 합니다.’(2007년 D5포럼에서) 한 연설 췌장암이라는 병, 그리고 내가 곧 죽을 거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어요. 이제 그것 역시 과거가 됐죠.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나의 마지막 희미한 정신까지도 미래를 향해 있었다는 건요.”

정말 믿거나 말거나, 그랬을 것만 같다만, 참 이 사람 인생 과연 재밌었을까. 도전과 극복밖에 없었던 건가, 인생이 무슨 컴퓨터 게임이냐고요.

“멋진 일은 무모한 도전 없인 해낼 수 없어요. ‘우리는 쓰레기 같은 제품을 절대로 팔 수 없다’(2007년 맥월드에서)는 것만 생각했어요. 그래도 불안하고 걱정도 많았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땐 화가 나서 울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했다면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당신들 때문이었어요.”

이 대목에서 얼핏 눈물이 비치는데, 이 남자 고개를 돌려버린다. 어흑, 왜 나까지 묵직해지는 거냐.

“아직 그 큰 무대의 밑그림밖에 못 그리고 당신들 곁을 떠나와버렸네요. 이제 쇼는 시작됐어요. 무대를 채울 사람은 결국, 당신들이에요. 잊지 마세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몽상가라 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에요.’”(2000년 애플의 최고경영자로 돌아왔을 때 발표 마지막 흘러나온 비틀스의 ‘이매진’)

56년 만에 푹 쉴 시간을 가진 잡스를 너무 오래 괴롭혔다. 역시 그는 너무 진지하다. 그런데도 멋지다. 아마도 그가 살아온 드라마 같은 삶 때문이겠지. 자, 이젠 미련을 털고 보내드린다. 부디, 평화 속에서 편히 쉬길. RIP(Rest In Peace), 스티브 잡스!

참고서적 <아이 리더십>(제이 엘리엇·윌리엄 사이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제프리 영·윌리엄 사이먼 지음, 민음사)

▣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20일 / 한겨레매거진 Esc





“당신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며 낭비하지 마세요”

애플 홈페이지 첫 화면

▲ 2011년 10월5일 새벽(현지시각), ‘혁신’의 시계가 멈췄다. 마음과 직관을 따라 살았던 스티브 잡스, 그의 나이 56살이었다.

“나의 첫번째 이야기는 점을 잇는 데 대한 것입니다. … 당신은 앞을 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뒤를 돌아보면서만 점을 연결할 수 있죠. 그러니 그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 (애플에서 쫓겨났을 때) 실리콘밸리에서 도망갈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내가 하는 일을 아직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 지난 33년간 나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묻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하고 싶어할까?’ ‘노’라는 날이 너무 많이 이어지면 무언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알게 됩니다. 내가 곧 죽을 것임을 기억하는 것은 삶에서 큰 선택을 할 때 나를 돕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앞에선 모든 외부의 기대, 자존심, 당혹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거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 당신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며 낭비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를 용기를 가지십시오.

… ‘언제나 갈망하고 언제나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나는 늘 스스로가 그렇게 되도록 바라왔으며 지금 졸업하는 당신들에게도 기원합니다.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2011년 10월5일 새벽(현지시각), ‘혁신’의 시계가 멈췄다. 마음과 직관을 따라 살았던 스티브 잡스, 그의 나이 56살이었다.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06일 / 국제경제





불굴의 도전…
아이헤븐에서도 그는 멈추지않을 것

스티브 잡스의 생애
태어나자마자 입양…대학 중퇴…애플서 축출… 심지어 죽음마저도 그의 도전을 막지 못했다
* 아이헤븐 : iHeaven. 천국에 i를 붙인 조어



스티브 잡스의 탄생은 그다지 축복받지 못했다.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와 생모 조앤 심슨은 미국의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던 중 사랑에 빠져 그를 낳았다. 하지만 조앤의 아버지가 시리아 출신인 잔달리와의 결혼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잡스는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사는 폴과 클래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심슨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폴과 클래라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입양을 허락했다고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밝혔다. 잔달리와 심슨은 그 뒤 결혼에 성공해 잡스의 여동생인 모나 심슨을 낳았지만 잡스를 다시 찾지는 않았다.

잡스는 학창 시절 사고뭉치로 보냈지만 양부모는 그를 따뜻하게 감싸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잡스도 양부모를 아주 사랑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양부모로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는 197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리드 대학에 입학했으나 1학기 만에 자퇴했다. 빈병을 팔아 음식거리를 마련하고 친구 집의 방바닥에서 자면서도 학교 수업은 꾸준히 청강했다. 잡스는 나중에 “수업료가 너무 비싸 부모님께 미안했다”고 자퇴 이유를 밝혔다.

그는 1974년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중학교 선배이자 나중에 애플 공동창업자가 된 스티브 워즈니액과 함께 게임회사인 ‘아타리’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돈을 조금 모은 그는 대학 친구들과 함께 훌쩍 떠난 인도 여행에서 선불교와 인도문화에 흠뻑 젖은 채 머리를 깎고 인도 전통복장을 한 채로 귀국했다. 그가 기존 방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문화적 혁신을 전자기기를 통해 구현한 것은 이때의 경험에 크게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21살이던 1976년에 워즈니액과 함께 아버지의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했다.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로 불리는 ‘애플’을 출시하며 단숨에 정보통신 업계의 기린아로 등장했지만 1985년 경영권 분쟁에서 져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가 1983년 “평생 설탕물만 팔거냐”며 설득해 영입한 전 펩시 부사장 존 스컬리에 의해서였다.

애플에서 쫓겨난 그는 독립해 ‘넥스트’라는 컴퓨터 회사를 만들었지만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재기의 기회는 엉뚱하게도 애니메이션에서 왔다. 그는 루커스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부문을 인수해 ‘픽사’라는 회사로 재탄생시켜 만든 <토이 스토리>로 큰 성공을 거두고, 픽사를 디즈니에 합병시키면서 거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1997년 경영 부진에 허덕이던 애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애플에 복귀한 그는 그동안 진행되던 프로젝트를 모두 다 갈아엎었다.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잡스의 대답은 단 한마디였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그리고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상상도 못한’ 제품들을 잇따라 내놓으며 전세계를 디지털 혁신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사업에서 이렇게 성공을 거듭하는 사이 그의 건강은 망가지고 있었다.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3번이나 병가를 냈고, 2009년에는 간이식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5일 새벽 사망했다.

잡스는 대학 중퇴는 “새로운 서체를 배울 수 있었던 기회”로, 애플에서의 축출은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기를 보낼 수 있게 했던 멋진 사건”으로, 죽음은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여긴 끈질긴 도전자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아이헤븐(iHeaven·천국에 i를 붙인 조어)에서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를 추모하고 있다.

▣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r











▲ 스티브 잡스는 오랜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1976년 컴퓨터(회로기판)를 제조하는 회사 ‘애플’을 공동 창업(위부터 사진 ①)한 이후 5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혁신적인 수많은 제품들을 내놨다. 창업 1년 만인 77년에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의 본사에서 ‘애플2’(사진 ②)를 선보였으며, 애플 컴퓨터 이사회의장이던 84년엔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사진 ③)를 출시했다.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한 첫 작품으로 1998년 ‘아이맥’(사진 ④)을 내놓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잡스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컨퍼런스 앤 엑스포’에서 1.0인치 하드 디스크를 사용해 크기가 작아진 ‘아이팟 미니’(사진 ⑤)를 선보이며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잡스는 이어 아이폰, 아이패드 등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았지만, 2011년 3월2일 예르바부에나예술센터에서 열린 애플의 행사에 참석(사진 ⑥)한 이후, 8월24일 건강상의 이유 등을 들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AP 로이터 연합뉴스 뉴시스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06일 / 국제 > 미국·중남미





매킨토시 꿈꾼 아빠, 아이패드 얻은 아들

스티브 잡스와 나의 추억을 꺼내들며 ‘이젠 안녕~’

스티브 잡스를 떠나보내며 눈물짓는 사람들, 많다. 옆집 살던 아저씨도 아니고, 가슴 뒤흔든 연예인도 아닌 이 사람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며 떠나갔다. 그가 우리에게 선물한 것은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만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 때문에 웃음짓게 된 이야기, 웃지 못할 웃긴 이야기.

지아무개(35)씨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를 뒀다. 아이는 집에서 아이패드를 껴안고 살다시피 한다. 지씨가 꿈꾸던 세상은 이런 게 아니었다. 아이패드2의 광고처럼 되길 바랐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요리를 하고, 배우며…’ ‘그래 이거야!’ 아이패드2를 샀다. 예상은 빗나가라고 있는 것. 사람들은 계속해서 요리를 할 수도 있지만, 맛집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내는 맛집 애플리케이션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린다. “이번 주말에 뭐 먹지?” 사람들은 아이패드2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가며 배울 수도 있지만,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는 아이패드2에 눈을 박고 외친다. “아빠, 게임 앱 사줘!”

이게 다 인지상정인 게다. 1990년대 초반, 중학생이었던 지씨. 그는 친구 집에서 매킨토시를 보고는 사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유는 단 하나, 게임 때문이었다. 꼭 그 게임을 거실에 컴퓨터를 놓고 해보고 싶었지만, 꿈만 꾼 채 고등학교에 갔다. 그리고 맥 대신 당구채를 손에 쥐었다.

그럼에도, 고마운 때 역시 있다. 아이가 자기 전, 야근 중인 그는 아이폰을 들고, 아이는 아이패드2를 들고 꼭 5분 동안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영상통화 기능 페이스타임 덕분이다. 집에 들어가 보면 아이 잠자리 곁에 아이패드2가 놓여 있는 것을 본다. 책이 곁에 놓여 있었다면 더 예뻐 보였겠지만.

또다른 누리꾼 ‘레드클라우드’는 “국민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매킨토시와 만났다.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폭탄투하 해서 지뢰 파괴하는 게임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어제 일만 같다. 컴퓨터공학도를 꿈꾸며 학창시절을 보내게 해준 은인이 스티브 잡스다.

1980년대 애플2, 울티마 게임을 하려고 구입. 1990년대 초반 LC3, 파워맥 7100AV, 넥스트스텝(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넥스트사가 개발한 객체 지향형 운영체제), 2000년대 맥북에어, 아이팟, 아이폰. 30대 후반이라는 누리꾼 ‘카페봄날’은 ‘국민학교’때부터 지금껏 애플이 항상 곁에 있어왔다고 돌아봤다. “외계에서 온 제품을 지구인들에게 선보여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잡스 같은 인물과 한 지구 아래 살아서 너무나 영광입니다. 이제 외계인 잡스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겠네요.”

‘dinki’라는 이는 “인생의 모든 축복을 연결해 준 키워드가 애플이었고 애플은 곧 당신이었다”고 고백했다. “맥월드에 미친듯이 빠져 살아” 애플사의 직원이 된 그는 애플에 새로 입사한 그 여인에게 맥과 애플을 알려주며 만나 결혼했고 아들까지 얻었다고 했다. “이제 며칠 뒤면 사랑하는 아들의 백일입니다. 이 아이에게도 당신의 천부적인 인문학적 철학, 관념의 위대함을 말해줄 날이 오겠죠. 정말 고맙습니다.”

▣ 이정연 기자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20일 / 한겨레매거진 Esc





시대 너무 앞서간 ‘실패작들’ 다시 태어나다

돌아온 잡스 iCon, 큐브·퍽 등의 혁신적 재활에 매달렸더니…


2022년, 아이콘(iCon)은 등장하자마자 혁신적인 제품을 쏟아냈다. 과거의 기억을 완벽하게 지우는 데는 실패. 아이콘은 과거의 실패작들을 하나씩 되살렸다. 뭇사람들은 실패작이라고 했지만, 아름다운 최고의 제품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는 듯.

아이큐브(iCube) → 2000년의 파워맥 G4 큐브. 난 이게 정말 멋진 제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빌어먹을 ‘토스터기’ 소리나 들을 제품이 아니었단 말이죠. 하지만 난 아직 믿어요. 혁신적인 디자인이라는 건 이런 거라고. 뭐, 상을 몇 개 타서 우쭐해 그런 것은 아니에요. 그런 건 난 신경쓰지 않아요. 그래서 기능은 바꾸되 큐브를 되살리기로 결정했어요. 반대하는 친구들이 많았죠.

버튼은 역시 하나예요. 들고 다닐 때는 납작하게 펼치면 되고, 쓸 때 버튼을 누르면 정육면체로 모양을 잡죠. 나를 열받게 만들었던 열나는 플라스틱 케이스는 탄소섬유로 교체, 탄소섬유 안에는 회로를 집어넣었습니다. 버튼을 연속해 두번 누르면 작동할 거예요. 우리는 이것을 홀로그램 메신저, 아이큐브라고 부릅니다! 영상통화로는 만족할 수 없어요. 복잡한 것 역시 딱 질색이죠.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매뉴얼조차도 필요 없어요


아이퍽(iPuck) → 정말 이걸 생각하면 창피해 죽겠어요. 얼굴을 들 수 없어요. 1998년 아이맥(iMac)은 아름다웠지만, 여기에 달려 나온 퍽 마우스가 준 망신을 생각하면 정말! ‘너무나 끔찍하고 쓸 데가 없어 실패작 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한 제품’이라고 했었죠. 누군가는 발바닥 지압에 쓴다고도 하고….

하지만, 보세요. 모양이 귀엽지 않나요?(반투명 플라스틱은 나도 좀 마음에 안 들지만….) 나는 암 치료를 받으면서 끔찍하고 차가운 의료기기들의 모양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의료기기의 소비자는 의사들이라 해도, 환자도 그것을 경험하는 것 아닌가요!

이 조그만 녀석을 몸에 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주세요. 자, 여기 보이나요? 당신의 몸 안을 스캔한 영상입니다. 정말 보기에도 갑갑한 관 같은 의료기기에 몸을 맡길 필요가 없어요. 이렇에 우리의 몸속을 읽습니다. 아이퍽이죠. 화가 난 채로 이 녀석을 부를 때는 발음에 유의하시길 바라요. 특히나 아이퍽을 시리를 켜서 작동시킬 때면 더 유의해 주시고요. 시리가 당신에게 어떻게 되갚을지는 나도 모르니까.

▣ 이정연 기자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20일 / 한겨레매거진 Esc





무시무시한 가르침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조금 전 뜻밖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보내오신 이메일입니다. 지난주 그 학교 자그마한 도서관에서 1시간 정도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죠. 그즈음 아이들 특유의 반짝이는 눈빛들에 눈부셨던 정경이 아직 잔잔히 남아 있습니다. 글쓰기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아이들의 궁금증 또는 답답함을 풀어주는 자리였습니다. 그 아이들의 반응이 이메일에 담겨 있네요. 아, 이런 기쁨이라니. 새삼 오랜만에 마음이 파릇파릇해집니다. “내가 과연 하루 동안 생각을 얼마나 할까?”라며 한 아이는 반성하고 있었고, 또다른 아이는 제게서 열정을 읽었다고 그렇게 자극을 받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얼굴이 빨개집니다. 그래서 저 역시 반성하고 다짐하게 됩니다.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아이들의 팔딱이는 열정을, 제가 배웁니다. 또다시 부끄럽습니다.

사람들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하나였겠죠. 한 인간의 신념과 상상력이 가시적인 물건으로 구현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영감을 얻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 아닌가요. 신나게 즐겁게 일했다고는 하지만 마냥 즐겁기만 하진 않았겠죠. 뭔가를 뛰어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해낸다는 것, 그것은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닿지 않을 것 같은 순간 이미 닿아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습니다.

살불살조라는 법어가 있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무시무시한 가르침. 반짝이는 아이들은 언젠가 저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구겨버려야 하고, 우리들은 언젠가 아이폰을 집어던지며 전혀 다르고 새로운 점들을 이어나가야 할 겁니다. 루쉰이 젊은이들을 향해 ‘나를 밟고 오르라’고 했던 것도 그런 것일 테죠. 스티브 잡스를 기억하고 이젠 잊어나갈 준비를 하려 합니다.

▣ 김진철 〈esc〉 팀장 nowhere@hani.co.kr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20일 / 한겨레매거진 Esc





잡스는 왜 교회를 끊고 절에 다녔나

굶주린 아이들 사진보고 선 불교 공부

지난 5일 작고한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공인한 전기 월터 아이작슨 저 ‘스티브 잡스’가 24일 발간된다.

잡스는 13살 때 라이프지 표지에 실린 굶주린 아이들의 사진을 본 후 일생 교회에 발을 끊었다. 그 후 그는 몇 년 간 선 불교를 공부했다.

잡스는 학교에서 가끔 괴롭힘을 당했으며 10대 시절 눈을 깜박거리지 않고 상대방을 응시하는 기술을 완벽하게 터득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일정 기간 동안 과일과 채소만을 먹곤 하던 잡스는 뒷날 과일만 먹던 기간에 사과 농장을 다녀오던 중에 애플이란 이름을 얻었다. 애플이란 이름이 "재미있고, 정신적이지만 겁을 주지 않은 것처럼" 생각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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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자서전 예약판매, 베스트셀러 7위로 뛰어

지난 5일 56세를 일기로 숨진 미국의 애플 창립자 겸 전 CEO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이 출간 전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25일에 나오는 잡스의 자서전 '스티브 잡스'가 지난주보다 8계단 뛰어올라 7위를 차지했다. 지난 6일 예약판매 이후 1주 만에 베스트셀러 차트 15위에 올랐었다. 미국 CNN 전 최고경영자 겸 시사주간 '타임'의 전 편집장인 월터 아이잭슨(59)이 집필했다. 생전 잡스가 유일하게 허가한 자서전이다.

법륜(58) 스님의 자녀 교육서 '엄마 수업'은 출간 즉시 13위에 랭크됐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 특성, 상황 시기별로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는 방법, 좋은 부모의 자격 등을 소개한다.

▣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21일





“수행의 목적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

故스티브 잡스의 스승 오토가와 코우분 스님

▲ 오토가와 코우분스님. 출처=코우분 스님 공식 홈페이지
애플사의 최고경영자로 지난 5일 세상을 떠나 스티브 잡스는 젊은 시절부터 선불교에 심취했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 스승(guru)을 찾아 인도 여행을 하기도 했으며 오토가와 코우분이라는 일본 스님을 정신적 스승을 삼고 명상 수행을 생활화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이고, 직관적인 애플의 정신이 스티브 잡스의 선 수행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지배적이다.

스티브 잡스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오토가와 코우분 스님(乙川弘文, 1938~2002)은 1938년 니이카타현 카모시의 조동종 사원에서 태어났으며, 일본 교토대학 석사과정에서 대승불교를 전공해 학위를 취득했다. 조동종 총본산인 영평사(永平寺)에서 3년간 수행한 뒤 1967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선(禪)수행을 중심으로 대승불교 포교에 앞장섰으며, 타사하라 선 마운틴 센터에서 1970년까지 스즈키 스님의 보좌역을 했다. 스즈키 스님 입적 후 1978년까지 로스앤젤레스 선 센터에서 활동하는 등 불교포교에 힘썼다.

2002년 스님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스티브 잡스의 스승으로 활동하며 인연을 쌓았다. 1976년 애플컴퓨터를 설립하고 1985년 이사회에 의해 애플에서 밀려났을 당시에는 코우분 스님과 만나 출가 수행자의 삶을 걷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1985년에 넥스트라는 회사를 설립했을 때는 코우분 스님을 회사의 공식적인 조언자로 영입하기도 했다. 1991년에는 지인들만 초청한 가운데 진행했던 결혼식 역시 선불교 스타일로 치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선(禪)불교 수행자답게 평소 수행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강의와 법문을 자주한 것으로 알려진 오토가와 코우분 스님은 생전 법문을 통해 “수행의 실제 목적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유지되고 있는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라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곧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스님은 직관의 중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같은 오토가와 코우분 스님의 생각은 “우리의 감각 기관은 전부 정밀하게 건설된 자각이다. 감각 기관에서 모든 정보들이 들어오는 순간 마음의 눈은 항상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여러 종류의 직관을 느낀다. 고요함 속에서 직관이 확실히 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의 법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오토가와 코우분 스님과의 교우는 스티브 잡스가 강조한 집중(focus)과 단순(simplicity)이라는 점에 잘 나타나 있다. 스님으로부터 배운 경행(經行)과 자신의 본질을 찾는 명상 수행은 스티브 잡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 동방학연구회 강사 오진스님은 본지에 보내 온 이메일을 통해 “오토가와 스님은 일본 동북 지방인 니이카타현 카모시 출신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활약한 일본 조동종 소속 스님”이라며 “특히 애플사 스티븐 잡스가 정신적 지도자로 존경해 그의 결혼식에도 초대할 정도로 친분 있는 사이로 잘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 엄태규 기자 | che11@ibulgyo.com

[출처] 불교신문 제2759호 2011년10월15일자





잡스의 점 잇기

입시생 아들이 손글씨 수업처럼 다른 무언가에 열중한다면…

▲ 김은형 경제부 기자
1990년대 중반 처음 사용하게 된 노트북 컴퓨터가 애플의 ‘파워북’이었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업무상 지급받은 것이었다. 대학 들어가면서 처음 산 286 데스크톱 컴퓨터로도 문서 작업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던 ‘컴맹’ 수준의 내가 애플에 관심이나 애정이 있을 리 없었다.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기억나는 건 딱 두 가지인데, ‘더럽게’ 무거웠다는 것과 서체가 예뻤다-영문 폰트야 말할 것도 없고-는 것이다.

‘맥북 에어’가 나올 때까지 매킨토시 노트북은 무겁기로 유명했으니 초창기 시절에는 벽돌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기분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들고 다니는 내내 ‘차라리 데스크톱을 지고 다니겠다’는 투덜거림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의 새문서를 클릭해 날씬한 블록 모양 글자를 탁탁 치기 시작하면 슬며시 잦아들었다. 능숙한 솜씨로 매끈하게 깎은 연필을 들고 사각사각 손글씨를 써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 연설에는 애플 컴퓨터 서체의 비밀(?)이 나와 있다. 잠깐 동안의 리드칼리지 시절 그는 대학가 곳곳에 붙은 포스터의 아름다운 서체에 반했다고 한다. 한 학기의 짧은 학창시절을 마치고 난 뒤 1년여의 청강생 시절을 보낼 때 그는 리드대학의 유명한 캘리그래피(손글씨) 수업을 들었다.

그는 연설에서 서체 수업을 청강할 때만 해도 손글씨에 대한 지식이 훗날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왜 아니겠는가. 손글씨와 디지털 비즈니스의 거리는 서울과 브라질 상파울루만큼이나 멀어 보이는데 말이다. 누군가 컴퓨터 전문가가 되기 위해 손글씨 수업을 듣는다면 얼마나 바보같이 들리겠는가. 다만 그는 어릴 때부터 그랬듯이 자신의 시선을 끄는 것에 빠졌고 손글씨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광은 그의 미의식과 안목을 한층 더 세련되게 키워줬을 것이다. 그 결과로 그는 서체가 빼어날 뿐 아니라 디자인에 있어서 다른 동종 제품을 압도하는 ‘물건’들을 줄줄이 내놓는, 그가 말한 ‘점에서 점 잇기’로 이어진 아주 기다란 선을 그려나간 것이다.

아이패드 화면에 침을 흘리며 코끼리며 고래의 울음소리를 처음 경험했던 아이가 엊그제 피시 화면의 뽀로로 아이콘을 꾹꾹 눌러대고 가능할 리 없는 플리킹(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화면 넘기기)을 하는 걸 보면서 갑자기 마음이 싸해졌다. 아이에게 문을 열어 세상을 처음 보여준 이웃집 아저씨가 떠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낸 직관적 인터페이스로 말도 떼기 전에 디지털 기기를 익히는 요즘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까 궁금증이 일었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점에서 점을 이어나갈까. 비단 스티브 잡스의 교훈을 듣지 않더라도 더 이상은 조기교육에서 특목고로, 좋은 대학에서 좋은 직장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점 잇기가 결정적인 행복의 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나도 성적이나 스펙보다 중요한 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입시를 앞둔 아들이, 또는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딸이 손글씨 수업만큼이나 안정된 미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무언가에 열중한다면 과연 나는 그 모습을 여유있게 지켜볼 자세가 되어 있을까.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목놓아 외치는 대한민국 기업들은 외국어를 빼놓고 과연 업무 내용과 별 상관없어 보이는 어떤 관심사나 재주를 가지고 있는 젊은이를 선택할 용기나 비전이 있을까.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점 잇기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 필요한 건 젊은 세대가 더 많은 점을 이을 수 있도록 여유있게 지켜봐 주는 기성세대의 인내다.

▣ 김은형 경제부 기자 dmsgud@hani.co.kr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11일 / 한겨레 프리즘





“좋은 목수는 보이지 않는 곳도 싸구려 쓰지 않는다”

잡스 전기 전세계 동시 발매
병상서도 “산소마스크 디자인 마음에 안든다”
“조작 가장 단순한 TV만들 방법 찾아내” 언급
아이폰에 ‘인텔 칩’ 쓰려다 삼성 칩으로 교체


“아름다운 서랍장을 만드는 목수는 뒤쪽이 벽을 향해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해서 싸구려 합판을 쓰지 않아요. 목수 자신은 알기 때문에 뒤쪽에도 아름다운 나무를 써야 하지요. 잠을 제대로 자려면 아름다움과 품위를 끝까지 추구해야 합니다.” 지난 5일 숨진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내놓고 강조한 내용은 사실 그의 아버지 폴 잡스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시사주간지 <타임> 편집장을 지낸 월터 아이작슨이 40여차례 잡스를 인터뷰하고 펴낸 <스티브 잡스>가 24일 전세계에서 동시 발매에 들어갔다. 전세계 소비자와 산업계가 잡스가 만든 제품과 자기장에서 움직였지만, 스스로는 베일에 감추던 내밀한 모습의 봉인이 풀렸다.

잡스는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쓰면서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셨지요”라며 아버지가 장롱이나 울타리를 만들던 태도에서 배웠음을 밝혔다. 완벽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아무도 보지 않는 인쇄회로기판의 컬러와 디자인을 비롯해 매킨토시 포장만 50번을 뜯어고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말년의 병상에선 의사가 산소마스크를 씌우자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며 벗겨내고 5가지 마스크를 가져오면 자신이 고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잡스는 부모를 양부모로 부르는 것에도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는 양부모를 “1000% 내 부모”라며 애정을 표했고, 생부모에 대해서는 “나의 정자·난자은행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작슨은 잡스가 젊은 시절 “입양되었다는 것과 친부모를 모른다는 사실에 고통받았으며, 이를 극복하려 몸부림쳤다”는 주변의 증언을 실었다.

▲ 스티브 잡스가 1991년 아내 로린 파월과 찍은 사진.

잡스의 부모는 잡스를 위해 헌신적이었고, 비범한 재능의 아들을 특별하게 대우하려 애썼다. 잡스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자 아버지 폴은 “바보 같은 내용만 외우게 만드는 학교가 문제”라고 말할 뿐, 아들을 탓한 적이 없다. 잡스가 중학교 때 따돌림으로 전학을 요구하자, 형편이 어려웠지만 푼돈까지 끌어모아 좋은 학군으로 이사를 했다. 잡스는 초등 4학년 때 그의 탐구욕을 북돋워준 교사 이모진 힐에 대해 “그분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소년원이나 들락거리고 말았을 것”이라며 ‘내 인생의 성자 중 한 분’으로 표현했다.

그는 스스로를 경쟁에서 승리나 돈을 추구하지 않는 예술가로 생각했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시켜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애플의 통제를 폐쇄가 아닌 통합적 접근법이라고 보았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싶고 사용자들을 배려해서, 쓰레기 제품을 내놓기보다는 사용자 경험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그가 다녔던 게임회사 아타리에서는 설명서 없이 동전을 넣고 게임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직관적인 단순함을 배웠다.

스무살 무렵 7개월간 인도를 여행하고 온 잡스는 “서구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목격했다”며 선불교에 빠졌다. 컴퓨터에서 팬을 없앤 이유도, 소음이 선불교의 명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1956년 아버지 폴 잡스에게 안겨 있는 두살 때의 스티브 잡스. 민음사 제공

기벽도 곳곳에 나타난다. 채식주의자로 당근이나 사과만 먹으면서 몇주를 버티기도 하고 “단식에 들어가 1주일이 지나면 황홀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젊은 시절 경험한 환각제(LSD, 마리화나)에 대해서도 “사물에 이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과속으로 딱지를 뗀 뒤 “또 걸리면 그땐 감옥”이란 경고를 듣고도 곧장 과속을 하는가 하면, 자신의 승용차는 번호판 없이 다니고 회사에선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했다. 자신의 딸을 부인하다가 유전자 검사를 받고 회사 이미지를 우려한 끝에 태도를 바꾼 모습도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그는 2007년 아이폰 출시 뒤엔 외부 개발자들이 아이폰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앱스토어를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내부 비판자들의 주장을 수용한 덕분에 앱스토어 생태계가 비로소 열렸다. 그는 아이폰에 처음엔 인텔 칩을 사용하려 했으나, 개발자들의 반대의견을 받아들였고 이는 자체 설계를 통해 삼성전자에 제조를 맡기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그는 “인텔은 느리고, 다 배우고 나면 경쟁자들에게 팔아먹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잡스는 애플이 뛰어들 새 분야도 언급했다. 그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조작법(UI)을 갖춘 텔레비전을 구현할 방법을 찾아냈다”며 단순하고 우아한 애플 티브이를 예고했다.

▣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25일자





“혁신가지만 때로 비열”…두 얼굴의 천재

전기 작가 아이작슨 “최악 경영자” 등 또다른 모습 평가

24일 출간된 스티브 잡스 전기의 작가 월터 아이작슨에게 비친 잡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가 23일 저녁(현지시각) 방영된 미국 <시비에스>(CBS) 방송의 프로그램 ‘60분’(60 minutes)에서 묘사한 잡스는 훌륭하지만, 변덕스럽고 복잡한 성격의 천재였다.

그는 “잡스가 임직원들과 논쟁을 벌이기를 좋아했으나 논쟁 때문에 측근 가운데 일부와 멀어졌다”며 “그는 때로 남에게 매우, 매우 비열했다”고 말했다. 잡스의 경영능력에 대해서도 아이작슨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는 했으나 그는 세계 최고의 경영자가 아니었다”며 “사실 그는 세계 최악의 경영자 가운데 한명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 등 정보기술 산업계의 경쟁자들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았던 잡스가 페이스북에 대해선 극찬을 한 사실도 공개됐다. 아이작슨은 잡스가 “소셜네트워크는 많지만 페이스북 말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며 “페이스북만이 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에 대해 “그를 아주 조금 알지만 그가 돈에 팔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칭찬하고 싶다”고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다.

이날 프로그램에서 아이작슨은 잡스가 한번은 사후세계와 축적된 지식이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 뒤 “하지만 가끔은 삶이 온-오프 스위치 같다고 느낀다. 클릭만 하면 끝나는. 그래서 나는 애플의 기계에 온-오프 스위치를 넣는 걸 싫어한다”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전기 발간에 맞춰 애플은 이날 누리집에 지난 19일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에서 열린 잡스 추모식에서 후계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한 추모연설 동영상을 공개했다. 팀 쿡은 이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가 월트 디즈니가 죽은 다음에 그가 무엇을 하기를 원했을까를 생각하고 이야기하느라 무력해진 전철을 애플이 다시 밟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잡스는 자신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 말고 그냥 ‘옳은 일을 하라’고 유언처럼 마지막까지 나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조언했다”고 밝혔다.

▣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25일자





“인간애 흐르는 혁신이 공감얻어”

잡스가 자서전에 남긴 글
“사업서 승리하는 것 보다
좋은 제품만드는 게 중요”
MS에 ‘사업만 추구’ 비난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려 한 목적은 무엇일까? 자서전 끄트머리에는, 잡스가 전기작가로부터 발언권을 얻어 직접 남긴 글이 실렸다. 잡스 스스로 ‘잡스의 유산’으로 기억되기 원하는 내용이다.

그는 혁신이 자신의 차별성은 아니라고 말했다. “폴라로이드의 에드윈 랜드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대해 얘기했다. 혁신을 꾀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 애플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우리의 혁신에 깊은 인간애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추구한 것은 이윤이 아니라, 혁신과 변혁을 선도하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이것이 지속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동기가 충만한 사람들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 회사를 구축하는 데 내 열정을 쏟아왔다”고 말했다.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이유도 고객이 필요를 느끼기 전에 그 욕구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잡스는 “내가 사람들을 함부로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가 형편없으면 그저 면전에 대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뿐”이라며 “내가 엉터리라고 생각하면 누구든 내게 그런 생각을 말할 수 있고, 나 역시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냉정함을 돌아보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나는 때때로 사람들을 냉정하게 대했다. 누군가를 해고하고 집에 왔는데 어린 아들을 보니까 가족과 어린 아들에게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괴로웠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표현했다. 빌 게이츠에겐 “사업에서 승리하는 것이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라며 “엠에스의 유전자에는 인간애와 인문학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매킨토시를 보고도 제대로 베끼지 못할 정도로, 엠에스는 애플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잡스는 자신에게 원동력이 된 것은 “자신이 각자 알고 있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 함을 통해, 인류에게 무엇인가를 기여하려고 노력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것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는 “1960년대를 휩쓴 이상주의 바람이 아직도 마음속에 있다”며 “언제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구본권 기자

[출처] 한겨레 2011년10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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