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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5 15:41:07, 조회 : 5,641, 추천 : 614 |
경책과 탁마로 하나되는 기회
도법.연관.수경 ‘따로 또 같이’
‘실상사 삼두마차’ 서로를 아끼는 마음 지극
말꼬리 잡는 싸움 아닌 화이부동의 ‘三人行’
불교신문 2월11일자 '연관스님의 글'을 보고
바야흐로 정월 대보름이 지나자 우수의 봄기운이 세상사 두두물물에 법석을 펴고 있다. 지리산 골짜기마다 고로쇠 물이 오르고, 10년 만에 쌍계사 아래 대숲을 찾아온 수십만 마리의 되새 떼가 날마다 저물녘이면 ‘천지개벽의 군무’를 이루고, 섬진강변의 매화 꽃망울들이 터질 듯 터질 듯 줄탁동기의 나날들로 분주하다.
그러나 휘휘 둘러보노라면 여전히 세상의 날들은 꽃샘추위 속에서도 ‘불타는 집’이요, ‘호떡집에 불난 듯’ 되새 떼의 지저귀는 소리보다 더 시끄럽다. 특히 ‘황우석 사태’로 야기된 소위 ‘황빠’나 ‘황까’의 단세포적인 논란은 ‘깨진 쪽박’을 나눠들고 서로 삿대질을 하는 양상이다. 구경을 즐기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경꾼에서 싸움꾼으로 전락하는 게 다반사이니 결국은 우리 모두가 구경꾼인 동시에 싸움꾼이 된 것이다.
참으로 아니 될 말이지만 예로부터 구경 중에는 화마인 ‘불 구경’이 제일이요, 그보다 재미있는 것은 수마인 ‘물 구경’이라 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싸움 구경’이 아닌가. 성악설에 가까운 듯한 이 ‘재미’라는 말이 참으로 고약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불거진 불교계의 논란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잠시 멈추고 호흡을 고르고 있던 도법 스님이 몇 군데의 언론에 ‘불교계의 황우석 지지에 대한 비판’ 등의 인터뷰와 기고를 하자, 장장 40여 년간의 도반이자 얼마 전 ‘우석선생 친근기’를 쓴 바 있는 연관 스님이 불교신문을 통해 ‘도법 스님, 이젠 그만 두시라’는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언론은 ‘불교계의 내분’ 운운하는가 하면, 불교계 안팎과 네티즌들은 무슨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양 저마다 아전인수격으로 야단법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관 스님은 그동안 언론 등에 한 번도 기고한 적이 없었으며, 도법 스님 또한 느닷없이 공개적으로 뺨을 맞은 격이니 일단은 참으로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아둔한 머리를 굴려 두 스님의 논지를 곱씹어볼수록 ‘황빠’와 ‘황까’ 혹은 저자거리의 싸움과 같은 구경거리의 차원을 넘어 오히려 참다운 공부거리가 될 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양심불량적인 카타르시스’는 고사하고 부럽다 못해 시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데 있다.
‘미망’ 혹은 ‘전도몽상’에 대한 심화학습이라고나 할까. 두 스님이 휘두르는 시퍼런 칼날이 베고자 하는 것 또한 미망과 전도몽상이니 사실은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더구나 일방적이긴 하지만 불가의 아름다운 가풍인 도반간 ‘경책’과 ‘탁마’의 실전을 몸소 보여주고 있으니 이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물론 두 스님의 어법이 다르고 방편 또한 다를지도 모른다. 세상을 해석하고 감지하는 안테나, 그 더듬이의 촉수가 아직은 무디고 무딘 시인으로서 나는 그저 두 스님의 글 중에서 강조와 비유에 휘둘려서 달을 가리키는 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도 아니라면 두 스님이 가리키는 달이 행여 서로 다른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 또 반문해보는 것이다.
‘오지랖 넓은 놈이 술값을 먼저 내듯’ 격에 맞지도 않는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지리산 실상사와의 인연 때문이며, 지난 7년 정도 도법ㆍ연관ㆍ수경 세 스님을 비교적 지근거리에서 만나왔다는 인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지리산에 들어간 초기의 2~3년 정도를 빼고는 줄곧 이 세 스님과 연을 이어왔다. 그러나 장장 40여 년간 도반의 길을 함께 걸어온 세 스님의 끈끈한 속정을 어찌 미루어 짐작이나 할 수 있겠으며, 그들의 경책성 화법이나 몸짓을 또한 어찌 꿰뚫어 볼 수 있겠는가. 다만 언제나 대의에 어긋나지 않았으니 따랐을 뿐이며, 최근 좁은 소견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볼썽사나운 ‘문자의 똥막대기’들을 되새기자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폐사지처럼 한가했던 지리산 실상사가 그동안 우리 시대 ‘생명평화의 베이스 캠프’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도법 스님의 부단한 열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언제나 연관ㆍ수경 스님이 있었다. 그리하여 혹자들은 세 스님을 일컬어 ‘실상사의 삼두마차’라 불렀다.
그동안 나는, 도법 스님과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1년간 함께 했으며, 수경 스님과는 탁발순례와 더불어 낙동강 1,300리와 지리산 850리를 걷고, ‘새만금 삼보일배’와 ‘북한산 문제’ 등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했다. 연관 스님과는 그의 ‘백두대간 종주’를 지원하기도 했지만, 주로 수월암이나 지리산 곳곳에서 차를 마시며 해박하면서도 소박한 스님의 풍모에 이끌려 스님은 가르친 바 없지만 나 스스로 문학 수업을 받은 셈이다.
새삼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 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세 스님의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도법 스님은 합리적이면서도 근본주의자인 ‘깐깐한 지장(智將)’이요, 수경 스님은 선객다우면서도 ‘섬세한 용장(勇將)’이요, 연관 스님은 선비나 학자다우면서도 큰 덩치에 비해 ‘여린 풀꽃의 덕장(德將)’이다.
그러나 얼마 전 연관 스님이 도법 스님을 질타한 ‘편지 사건’만을 놓고 보면 이와는 전혀 다른 향이 풍기니 참으로 기이한 양상이 아닐 수 없다. 연관 스님은 잠시 덕장이기를 포기(?)한 ‘깐깐한 지장’을 표방한 듯하고, 수경 스님은 두 스님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며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여린 풀꽃의 덕장’이 되었으며, 묵묵부답인 도법 스님은 ‘대범한 용장’이 되었다. 이렇게 뒤섞이고 보니 그것 참, 서로 한 몸이 아닌가.
그리하여 세 스님이 이처럼 서로의 심중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느닷없이 의표를 찔러보는 일은 말 그대로 다반사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실상사 주변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세 스님을 두고 ‘아마 전생의 부부였을 것’이라며 입방아를 찧었다. 그 정도로 속가의 부부나 식구들처럼 서로를 너무 잘 알다보니 많이 다투기도 했다는 얘기다.
불교신문에 기고한 연관 스님의 글을 보면 사실 도법 스님에게 가차 없이 경책을 내려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도법 스님이 주창하는 ‘생명평화의 근본적 가치추구’를 몰라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다만 ‘끝내 모른 척하는 것은 동조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으로 필을 들었다는 얘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기고만장 자신에 찬 언사를 하고 있으나, 어진 사람은 십성어를 꺼려하는 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라며 연관 스님이 ‘기고만장’ 혹은 ‘안하무인’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은 것을 보면,도법 스님이 황우석 사태에 대한 ‘불교계의 미망’을 들고 나오면서 자세히 살피지 않고 조계종 전체를 싸잡아 후려치는 듯한 일갈에 대한 화답이자 경계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조금은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도법 스님은 황우석 사태를 생명평화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먼저 불교적 세계관과 생명공학의 윤리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다보니 ‘불교계의 미망’ 등을 거론한 것이었고, 연관 스님은 발언 내용보다는 ‘십성어’로 확언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 더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직접 ‘우석선생 친근기’를 쓰고, 여러 중진 스님들과 더불어 ‘양극화로 치닫는 황우석 교수 사태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합니다’는 의견서와 ‘허물기는 쉬워도 세우기는 어려운 법’이라는 광고에까지 이름을 내며 황우석 사태에 대해 중도적 자세를 잃지 않으려 애를 쓰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연관 스님이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불교계 일각에서 마치 ‘황빠’처럼 일을 도모하는 이들과 함께 자신이 ‘도매금’ 넘어가는 듯해 매우 서운 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서운함이야말로 이미 세 스님이 ‘부부처럼’ 일상적으로 자주 주고받던 것이었으니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연관 스님의 지적대로 ‘당차고 겁이 없는’ 도법 스님이 자칫하면 불교계 내부의 오해나 반감에 휩싸여 행여 깊은 상처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다 못해 ‘끝내 모른 척 하는 것은 동조하는 것과 같아’ 도반으로서 한발 앞서 내지른 사전포석의 측면은 없는 것일까.
다시금 돌이켜 보건대 연관 스님이 지극한 애정에 근거해 오래 전부터 해오던 말을 도법 스님에게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옳은 일이라면 목숨을 걸되 중도를 잃지 않고 ‘우리 모두 신발부터 똑바로 놓자’는 조고각하의 초심을 주문한 것이다. 체질적으로 남 앞에 나서길 꺼려하는 연관 스님의 이러한 주문은 사실 새로운 어법이 아니라 사회문제 전면에 나선 도법ㆍ수경 스님에게 오래 전부터 말과 행동으로 해왔던 것이며, ‘천지를 진동하는 우레의 웅변보다는 귓가를 간질이는 가는 비의 속삭임을 보고 배우라’는 간곡한 당부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어쨌든 ‘실상사 삼두마차’의 현 상황은 ‘따로 또 같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또 다른 절정인 것 같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리산 댐 문제’가 불거지자 도법 스님은 선객인 수경 스님을 ‘진속불이’ 관점으로 끝까지 설득해 산문 밖으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고, 수경 스님 또한 그 화답으로 도보순례뿐 아니라 ‘삼보일배’에 이르기까지 내친 김에 온몸으로 나섰다. 그러나 연관 스님은 여전히 ‘목석’이었다. 학승의 자세를 잃지 않고 언제나 그늘과 배후를 자처해왔다.
오래 전 제6회 풀꽃상 시상식 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세 스님이 지리산 물봉선과 함께 수상을 하게 되었는데, 연관 스님은 이른 아침 산에 오른 뒤 끝내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7대 종단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한 ‘지리산 위령제’를 전후해 도법 스님이 스스로 산문 밖 출입을 삼가며 3년 기도에 들어가자 수경 스님은 이를 대신해 사회 전면에 나서고, 연관 스님은 목숨을 걸고 한겨울 ‘백두대간 1,500리 종주’로 화답했다.
‘해인사 청동대불 사건’ 때는 오히려 연관 스님이 앞장을 섰으며, 생명평화탁발 순례 길에는 도법 스님이 단장을 맡아 일선에 서자 수경 스님은 도감을 맡으며 묵언하는 등 ‘따로 또 같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별수도원인 봉암사에서의 동안거에서도 수경 스님은 ‘조식취모’의 공양주를 맡고, 연관 스님은 당시역사의 불목하니를 맡으며 수행을 했으며 그 와중에도 수경 스님은 ‘지율 스님과 새만금 문제’에, 연관 스님은 ‘황교수 사태’에 눈길을 접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도법 스님은 여여히 생명평화의 길을 걷고 걸었으니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의 길이 어찌 다르다 할 것인가.
작금의 상황을 보면 연관 스님이 상대적으로 사회문제의 전면에 나선 감이 없지 않으니 ‘환상의 콤비’인지 다투는 게 때로 미덕이 되기도 하는 ‘전생의 부부’인지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든 연관 스님이 마침내 대사회적 일성을 터뜨렸으니, 결과적으로 도법 스님으로선 오래된 도반만 아니라 생명평화의 도도한 여정에 있어 또 하나 ‘진속불이의 동지’를 얻은 셈이 아닌가. 다소 문제의식이 다르고 또 억울할지도 모르지만, 도법 스님이 굳이 말꼬리 잡기 식의 반론을 펴지 않는 점 또한 이를 간파했다는 것의 방증이며, 바로 이 사실이 참으로 아름답다 못해 부러운 것이다. 이처럼 절절한 도반이라면 감히 옛말을 뒤집어 ‘흥정은 말리고 싸움은 붙이라’며 다음 초식을 기다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아무리 둘러보아도 ‘경책과 탁마의 삼인행’ 혹은 서로에게 스승이 되는 ‘화이부동의 삼인행’을 찾아보기 힘든 가운데, 지금 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때마침 동안거 해제를 했으니 조만간 수경 스님이 먼저 법석을 깔 것이고, 도법 스님은 연관 스님의 경책에 대한 화답으로 그저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내 뜨거운 찻잔을 건넬 것이다. 그러면 연관 스님은 모두의 찻잔 속에 한 송이씩의 매화꽃을 띄우리라. 다만 그것뿐,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 이원규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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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신문 제2204호 / 2006년2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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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석선생 친근기’는 ‘황우석 박사를 직접 만나본 글’이란 뜻인데, 곰팡내도 나고 촌스럽기도 하여 그런대로 정감이 가지 않습니까.
나는 산중에 우거하는 일개 땔나무꾼입니다만 며칠 전 황선생을 만나 서너 시간을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수인사를 나눈 후 각기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그분과 동행한 어느 선생과 우리 식구 네 명이었습니다. 눈빛이 참 고운 분이더군요. 콧대는 우뚝하지만 매부리처럼 약간 굽었고 하관(턱주위)이 튼실하더군요. 눈 주위가 밝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떠나올 때 깎은 듯 파르스럼한 면도자국이 표정을 한결 단정히 보이게 했습니다.
“염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표정이 밝고 생기 있어 보입니다.”했더니, “이곳에만 오면 늘 이렇게 생기가 돕니다. 언젠가 틈내어 한참동안 지내고 싶습니다.”하더군요.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졌으니 두루두루 세상구경은 잘했겠습니다.”하니, “아직까지 더 떨어져야 합니다. 그럴 겁니다. 덕분에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하더군요.
그리고는 자신을 하늘 끝까지 올려놓았다가 동시에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뜨리기도 한 문제의 그 일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자신의 연구란 어떤 것인가, 어떤 점이 문제가 되었는가, 비난에 휩싸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가 하는 등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백컨대 나는 그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띄엄띄엄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 낱말 몇 가지 외 그냥 간간이 들리는 서양말과 우리말 모음과 자음이 뒤섞여 있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세계 초일류 선생님에게서 그의 연구 내용을 강의 받는 분복을 만났으나, 엄감생심 나 같은 땔나무꾼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에 불과하더군요. 그러니 이 자리에서 나는 그날 그에게서 들은 강의 내용을 여러분께 아무것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날 한 자리에 같이 한듯이 이미 그런 내용들을 소상히 알고 있을 것이니 내가 다시 중언부언하는 것은 한낱 병무(여섯째 손가락)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내가 하는 일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 그렇습니다. 다 같이 이 세상에 제 발자국 만큼의 넓이를 차지하고 서 있습니다. 더도 덜도 없이.
그래서 나는 감히 오늘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삼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와 그의 연구원들이 하는 일이 인류를 위해 진정으로 유익한 일이라면 그들에게 다소의 과오가 있더라도 (그는 대화도중 몇 번씩이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며 고백하고 뉘우쳤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그의 연구가 결실을 맺도록, 그리하여 인류에게 크게 봉사할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깊은 성원을 보내야 할 줄로 압니다. 현재 그에게 국내에는 아무데도 그와 그의 연구원들이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대화 도중 나는 그에게서 한마디도 남을 원망하거나 비방하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간 후 그 자리에 함께했던 우리 식구 모두가 한결같이 탄복한 점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팀을 이탈하여 떠난자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말을 몇 번 씩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변변찮은 일개 땔나무꾼이 먼지 앉은 빈 종이를 찾아 등불 심지를 돋우고 책상 앞에 앉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러분에게 고언을 드리는 것은 그분의 명성 탓도 그 분의 학문 탓도 아니고 단지 남을 원망할 줄 모르는 그 선한 눈빛이 며칠씩이고 눈에 밟혀 전전반측 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년의 순정이 아직도 남았군’하고 비웃으십니까. 중늙은이의 유약한 심사라고 치부해 버리십니까. ‘사람의 됨됨이가 어진이 치고 난을 일으키는 자가 없다’한 것은 논어의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설령 훗날 그의 연구가 특정 언론에서 밝힌 것처럼 정말 새까만 거짓,사기,불필요한 일임이 확인되어 우리를 배신하고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사람을 신뢰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화합할 줄은 알았지 않습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붓을 든 김에 잠시만 더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초제를 뿌리고 잡초를 메고 하여 새파랗게 잔디 한 가지만을 가꾸는 것은 어느 부잣집 안마당에서나 골프장에서나 운동장을 만들면서나 하는 짓이지 자연 속에는 그런 이치가 없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는 세상을 온통 새파란 잔디 한가지로만 만들려는 심사인지 ‘이것은 옳지 않다. 이렇게 해야 한다’ 하고 참으로 가당찮고 같잖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 넓은 산과 들을 보십시오. 온갖 나무,풀들이 제마다 다른 모양과 색깔과 꽃과 향기와 이파리를 달고 서로 섞여 살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 독선과 아집과 권위가 있습니까.
그 종교는 자신들만이 세상을 선도한다는 어떤 선민의식에 빠져있는 듯합니다만, 그런 배타적 논리로는 구세, 즉 세상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을 혼란과 질시와 전쟁의 구렁텅이로 선도하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주장은 한갓 나만의 허언공담이 아니라 수많은 선각자들이 이미 누누이 지적한 바 있고 인간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였으며 오늘 이 시각에도 세계 도처에서 수 없이 그러한 징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동양종교는 어떤 이치를 설명하면서 곧잘 비유를 들어 보이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경전은 다분히 탐미적이고 짙은 문학성을 띄기 일수 입니다.
예컨대 ‘진리의 세계’를 ‘화엄법계’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화엄’이란 ‘잡화엄식’의 약칭으로 ‘여러 가지 꽃으로 꾸며진 세상’이란 뜻이라고 들었습니다.
진리. 곧 ‘화엄법계’란 그들이 언필칭 입만 열면 말하는 이른바 ‘사랑,용서,화해’의 불교적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으로만이 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됨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짐승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습니까?”
“소를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소의 어떤 점을”
“질 좋은 종자로 증식하고 싶은 거지요. 나는 충청도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가난하여 부모님은 남의 소를 빌려 이를 키워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니 자연 소에 대해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정말 멋진 소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일로 시골의 어머니가 쓰러졌다고 합니다. 좀 더 오래 사셔서 내가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 할 텐데.”
이미 밤도 꽤 이슥했습니다. 손을 맞을 제 으레 드리는 찻잔은 서늘하게 식은 채 그냥 그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고. 과일 한 쪽도 입에 넣지 않았습니다. 까맣게 탄 속내를 알 듯도 하더군요.
이젠 헤어져야합니다. 두 손을 서로 움켜잡은 채 한참씩 고개를 떨구고 서 있습니다. 돌아서서 문을 나서는 그에게 나는 아무 위안이나 도움도 드리지 못한 채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한다 하니, 아주 입맛이 없을 때 이거라도 끓여 훌훌 마셔보십시오. 그리고 억지로라도 식사를 챙겨 드십시오”하는 당부와 함께 까만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불을 때 지어 눌은 밥 누룽지 네댓 조각. 끝.
▣ 글쓴이 : 담시역사, 조식취모
[출처] http://cafe.daum.net/iloveh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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