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신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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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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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13일부터 5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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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핀
피할 수 없는 인과의 법칙

- 법사 : 묘주 스님 -


조선시대에 복 많은 허재상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너무나도 마음에 꼭 드는 애첩이 있는데, 그 애첩은 재상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이 말도 하기전에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처리할 정도로 다정하고 상냥하였습니다.
따라서 재상은 대궐에서 일을 마치기가 바쁘게 곧바로 집으로 애첩을 보러 달려가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꿈 같은 세월이 어느덧 3년이 흐른 어느날 재상이 대궐에 간 사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이 애첩은 마침 재상집에 들른 숯 장수를 보더니 그 사람을 따라 집을 나섰던 것입니다.
애첩이 나간 사실을 알게 된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고 재상이 돌아와 그 애첩과 숯 장수를 찾았으나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 였습니다.

"그렇게 상냥하고 다정하던 애첩이 왜 이렇게 호강하면서 살 수 있는 재상집을 버리고 한낱 보잘것 없어 보이는 숯을 만들어 파는 숯 장수를 따라서 내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황급히 가버렸을까?"

재상은 만사를 제치고 그 숯장수를 찾아나섰습니다. 그리하여 강원도 산골 등지로 숯을 만들어 파는 곳만 을 몇년 동안을 찾아 돌아다녔으나 찾을 길이 없던 어느날 산골에서 지친 몸을 잠시 쉬고 있을때, 바로 그 옆을 지나가는 남루한 옷차림의 한 여인을 보니 그녀가 바로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자신의 애첩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찾았으니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이야기를 했으나, 옛날의 그 다정했던 애첩과는 달리 냉랭하게 돌아서며, "당신과의 인연은 끝났으니 나는 이제 이 사람을 따라 가야 합니다." 하면서 미련없이 그곳을 지나가 버렸습니다.

"내가 그 숯장수보다 무엇이 부족한게 있단 말인가?" 이러한 의문들만이 머리속에서 맴돌기만 할 뿐 그 해답 을 찾을 수가 없었지요.

드디어 재상은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 출가 수행를 결심하게 되었고, 일념으로 그 문제의 해답을 찾기위해 정진하던 중 마침내 참 자아를 발견하고 보니 전생을 알 수 있는 신통을 얻게 되어 지난날의 일을 살펴보니, 자신의 애첩이 자신을 버리고 말없이 떠났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과 애첩 그리고 숯장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인과관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즉, 자신은 전생에 수행을 하던 '스님'으로 추운겨울 자신의 누더기 옷 속에 살고 있던 '이' 한마리를 봄이 될때까지 겨울 3달 동안 정성스레 품안에 넣고서 잘 보살펴(?) 주었고 이듬해 따뜻한 봄이 되어서 자신의 누더기를 벗어야 하는데 보살피던 '이'를 어디로 잘 보내면 좋을까 궁리하던중 아랫마을에 사는 신도집의 털 많은 강아지가 적당할 것 같아 조심스레 이를 개 한테 옮겨 두고는 그 일을 까맣게 잊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성스레 보살폈던 '이'가 바로 애첩의 전생이 었고, 전생의 한겨울 3달 동안의 보살핌에 대한 인과의 과보로 금생에 3년간 재상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여 보답하였던 것이었으며, 그 인연이 다하자 그 다음으로 전생에 자신을 보살펴준(?) 그때의 털많은 강아지에 대한 보답으로 재상을 떠나서 그 숯장수를 위해서 정성을 다하여 보답하기 위해서 따라간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한치의 어김도 없는 인과의 법칙을 명심하여 모든 악을 여의고 모든 선을 행하여 우리 모두 남을 위한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곧바로 자신을 위한 길임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 경기불교대학 월정사 성지순례 법문 중에서-


假令經百劫
설사 백겁이 지나더라도
所作業不亡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아서
因緣會遇時
인연을 만날때는
果報還自受
그 과보를 스스로 받는다.


 
월정사에서 위 법문을 듣고나니, 13년 이상(1984.5.13~1998.1.10) 함께 살다가 딸과 내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코 혼자 떠나겠다던 韓桂淑 (韓知延) 과의 피할수 없는 인과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참 자아를 찾지 못한 범부중생의 경우에는 그러한 인과를 스스로 알지 못하면서 그 과보를 받는 반면에, 인과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는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통해서, 삼계의 도사, 사생의 자부이시며 우리가 그토록 존경하는 부처님의 경우에는 그 인과를 아시면서 그 과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자세가 다를 뿐이다. 인과의 원인은 모를지라도 긍정하며, 원망하지말고 남의 탓도 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 지난 날의 업을 녹이고 잘못을 참회하며 행복의 씨를 심으며 선업을 닦아나가리.


붉은 핀
누구를 탓할 것이며 누구를 원망하랴!

- 부처님의 이야기 -


부처님께서 비란다국의 성문밖 연목수 밑에서 살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이 나라의 왕 비란야는 5백명의 비구를 거느리고 계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크나큰 존경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부처님 전에 나아가 설법을 들은 다음 청을 올렸습니다.
'부처님이시여, 3개월의 안거 기간동안 부처님과 모든 스님들이 먹고 사용할 음식 탕약 의복 침구 등의 모든 것을 제가 공양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요.'
부처님께서 이 청을 받아들이자, 왕은 매우 기뻐하며 궁으로 돌아와 대신들에게 여름 3개월 동안 메일 열여덟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토록 할 것을 명하였고, 백성들에게도 포교령을 내렸습니다.
'어느 누구일지라도 이 여름 3개월 동안은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것을 금한다. 이를 어기는 자는 목을 밸 것이다.'
그날 밤, 왕은 하얀 차일에 궁성이 뒤덮히는 꿈을 꾸고 깜짝 놀라 평소 존경하던 예언가를 불러 해몽을 부탁했습니다.
이 꿈은 좋은 징조이다. 그러나 좋다고 해몽하면 왕은 부처님을 더욱 후하게 공양할 것이다. 나쁜 꿈이라고 풀이하자.'
평소 부처님에 대해 강한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던 예언가는 거짓 꿈풀이를 했습니다.
'왕이시어, 이 꿈은 왕위를 잃든가 반란이 일어날 것을 알리는 꿈입니다.'
왕은 매우 놀라 물었습니다. '왕위도 목숨도 버리지 않을 좋은 방법은 없는가?'
'이 여름 3개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마시고 궁궐 깊이 숨어 계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왕은 즉시 전국에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이 여름 3개월 동안은 그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나를 보는 것을 금한다. 만일 이것을 범하는 자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왕은 생명에 대한 애착 때문에 부처님과 한 약속을 까마득히 잊은 채, 포고령을 내린 뒤 궁중 갚이 숨어 버렸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부처님과 5백 명의 비구는 공양을 받기 위해 궁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왕궁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수문장은 출입을 봉쇄하며 말했습니다.
'국왕께서는 앞으로 3개월 동안 그 누구라고 만나지 않겠다고 하셨고, 만일 만나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목을 베겠다는 포교령을 내렸습니다.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음을 안 부처님과 5백명의 비구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공양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목소리로 거절했습니다.
'우리들 누구도 앞으로 3개월 동안은 공양을 바칠 수가 없습니다. 저희들은 공양을 올리고 싶지만, 국왕이 포고령을 내려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을 바치는 것을 금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금지령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거절하였습니다. 이 무렵 한 상인이 5백 마리의 말을 끌고 북방에서 이나라로 왔고, 부처님의 시봉인 아난존자는 그를 찾아서 자초자종을 밝힌 다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나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니다. 왕의 포고령이 나에게는 미치지 않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상인은 말했습니다. "아난존자시여, 저에게는 달리 양식이 없습니다. 오직 말들의 먹이인 말먹이 보리 밖에 없습니다. 만일 이 보리라도 좋으시다면 부처님께는 하루 두 되, 스님들께는 한 되씩, 오백 마리의 말먹이를 공양하고 싶습니다. 괜찮습니까?"
아난은 부처님께로 돌아와 이 일을 아뢰었고, 부처님께서는 담담히 말씀하셨습니다.
"말먹이를 먹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나의 업보요 5백 비구의 업보이다. 나는 기꺼이 그의 공양을 받겠다. 아난아, 너는 주(籌)를 가지고 비구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여라. '3개월 동안, 말먹이 보리를 먹고서라도 부처님과 함께 머물러 안거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주를 가지라'고."
아난이 비구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자 498명의 비구들은 주를 뽑아, 말먹이 보리를 먹더라도 부처님과 함께 안거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제자인 사리불과 목건련 두 비구는 주를 뽑지 않았습니다. 사리불은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지금 이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3개월 동안 찬 성질의 말먹이 보리를 먹는다면 병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목건련도 뒤따라 말했습니다.
"부처님, 저는 사리불을 간호해야 하므로 그와 함께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이리하여 부처님과 498명의 비구는 비란다 성밖, 연목수 아래에서 상인이 주는 말먹이 보리를 먹으며 안거하였고, 사리불과 목건련 장로는 삼봉산으로 가서 천인(天人)들의 공양을 받으며 여름 3개월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과 비구들은 말먹이 보리로 밀개떡을 만들어 먹었고, 아난은 밀개떡을 드시는 부처님을 뵈올 때마다 매우 비통해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지극히 담담한 모습으로 밀개떡을 드셨습니다.
이렇듯 가장 완벽하다고 하는 부처님께서도 여름 석달 동안 말먹이 보리를 먹어야 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물론 복덕을 원만히 갖추신 부처님도 사리불이나 목건련 존자처럼 천인들로부터 좋은 음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먹이 보리로 만든 밀개떡을 너무나 담담하게 드셨습니다. 삼세의 인과를 꿰뚫어보고 계셨던 부처님께서는 '당연히 찾아올 고난이 왔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자세로 임하셨던 것입니다.

3개월의 안거가 끝난 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모두가 옛날 비바시불을 비방한 과보에서 생긴 것이다. 당시 5백 명의 동자를 가르쳤던 나는 존경받는 비바시불을 질투하여 비바시불을 따르는 비구들에게 '말먹이 보리나 먹으면 제격' 이라 하였고, 제자들도 이에 동조하였느니라. 그러나 그 중 두 명의 영리한 동자는 오히려 바라문을 나무랐느니라. '스승님, 그런 욕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귀하신 이 분들은 오히려 천인의 공양을 받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결론을 맺었습니다.
"비구들아, 그때의 바라문은 나의 전신이요 5백의 어린 제자는 지금의 그대들이며, 두 명의 영리한 동자는 사리불과 목건련이니라. 이 악담의 과보로 나와 너희 498명의 비구는 이 여름 3개월 동안 말먹이 보리를 먹어야만 했고, 사리불과 목건련은 그 악담을 꾸짖은 선한 인연으로 삼봉산에서 천인들의 공양을 받은 것이다.
내가 항상 말했듯이 악업에는 언제나 나쁜 과보가 따르고, 선업에는 언제나 좋은 과보가 따르기 마련이다. 어찌 누구를 탓할 것이며, 누구를 원망하랴. 너희들은 인과의 도리를 깊이 명심하여 더욱 수행에 힘써야 하느니라."

- 법공양[2545.2] 보왕삼매의 가르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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