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여행
졸업, 여행, 누구나 설레이는 단어,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 외떨어진 이방인의 낯설음,
일상으로부터의 해제와 탈출 속에서 새로운 사유의 즐거움인 여행! 불혹이 훨씬 넘은
나이에 머리 희끗희끗한 졸업여행. 그래도 설레이기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아닌가? 내가 벌써 졸업을 하는 것인가?
98년 3월 7일 입학하던 날. 용주사 정락 큰스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근세
선지식 전강선사께서 하신 말씀이시라면서 입학생들에게 간곡히 당부하신 말씀.
"하다말다, 그럭저럭, 흐지부지 하지말라."
이제 졸업이 다가오니 당부하신 말씀대로 열심히 공부하며 노력하였는지 자성을 해본다.
20년전 다녔던 대학은 많은 등록금을 내고도 '하다말다, 그럭저럭, 흐지부지'하였지만
경기불교대학에서 부처님 말씀공부에야 하다말다가 있을 수 없고,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지도 않았으며, 그 결과 또한 흐지부지 하지 않고 정말 우리 불교대학 도반님들은
열심히 공부하였다.
"직장에서도 열심히! 가정에서도 성실하게! 불교대학에서도 최선을!"이란 슬로건으로
주경야독(晝耕夜讀) 쌍촉을 밝히시며 열심히 공부하신 거사님들 그리고 보살님들. 정말
형설지공(螢雪之功)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저 멀리서 듣던 옛이야기가 아닌 지금, 여기
경기불교대학에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우리 도반들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사실 몇 년전부터 서울의 여러 불교대학에서 입학하라는 제의도 있었지만 수원포교당
에서 개설하는 불교대학에 첫 입학생으로 다녀야겠다고 여러번 다짐하기 몇 해만에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으로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은 불교문화원2층
법당 영험하신 관세음보살님께서 형통묘지력을 발하시어 다 이루어지게 해주셨는데,
어머님이 사경을 헤매이실 때도 보살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려 살려주셨고, 15년만
에 태어날 우리 아가 ... 등 등. 그 가피력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성관 주지스님께서 언제나 대중의 포교를 지상의 화두로 삼으시고 자나깨나 애쓰신
덕에 서울까지 유학하지 않고 이렇게 편안하게 시간, 돈, 힘 덜들이고 경기불교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또한 전국불교대학 중 최고의 덕망과 지식을 갗추신 박사 스님들로 강사진을 이루어
우리들을 지도해 주셨다. 불교의 진수를 전수해 주신 정락 큰스님, 종호스님, 진열스님
묘주스님, 효탄스님, 그리고 포교당 주지이신 성관스님께 그 동안 애써주신 은혜를 한
줄의 글로는 감사의 뜻을 다 전할 수 없다.
그 동안의 공부를 더듬어보니 [선(禪)이 뭐꼬? 대승과 소승, 야훼와 신흥종교, 불교
경전 입문, 한국불교사, 불교문화론, 부처님의 생애, 대승기신론] 등등.... 아마 다른
곳에서 이 정도 공부하려면 10년은 걸려야 할 텐데 1년만에 마치니 천상에서 공부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락큰스님 공부 중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집은 청와대, 제일 싫은 집은 교도소
이나, 청와대 사람이 바로 교도소로 가니 그 집이 그 집 아닌가?"라든지, 중생이 재물
을 모을 때 "명 긴 사람은 망할 때까지 모으고, 명 짧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모은다."
라든지, 재미나는 말씀 중에 부처님 사상을 그대로 담고 있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다. 정말 재미있었던 경기불교대학과의 1년 인연, 그러나 이제 졸업이라
아쉽기만 하다. 언제 또 공부의 깊은 삼매에 빠져 희열을 느껴보나. 낙제를 해서 재수,
삼수로 극락에 더 머물까? 아쉽다만 우리들이 졸업하면 2회, 3회 차례로 불교대학을
이끌어 갈 동량들이 있지 않는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 후배들을 위하여 좋은 동문
모임을 만들고 지원도 하고 포교활동도 게을리 하지 말 것이며 열심히 경조사도 참여
해서 탄탄한 불교대학을 만들어야겠다는 취지로 졸업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1박 2일로 동해 겨울바다로, 관세음보살님에게로 떠나기로 약속한 그 날.
하늘은 맑았고 구름 한 점 없었다. 겨울바다와 일출, 낭만, 출렁이는 파도, 기대와
부풀음 속에 그 동안 배워왔던 소금 맛을 느끼기 위해 동해로 출발!
목탁소리와 천수경에 취한 버스는 출렁출렁 파도를 닮았는지 벌써부터
흔들리며 강원도 비탈길을 오르내리는구나. 공부 잘하는 함대사(?) 청하여 흥겨운
우리 가락 들어보고 불교대학 콩쿠르에서 장원하신 보살님도 모셔서 뽕짝 메들리도
신이 나고, 어느덧 해는 지고 별빛은 빛나 미시령 넘어 동해 속초의 불야성 우리들이
그리던 첫 목적지 대명 콘도미니엄.
'오늘 이 하룻밤에 성불치 못하면 우리들은 내일 수원으로 간다'는
비장한 각오로 저녁을 먹고 우리 경기 불교대학의 발전을 위한 토론 모임을 갖고,
영원성을 나타내는 증표로 1회생 대표 조권형 회장님께서 3회생으로 들어올 예비입학생
보살님께 발우를 전수하여 경기불교대학의 법맥이 영원히 이어짐을 알리게 되었다.
우리의 도원결의(?)가 끝나고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커피숍이나 방콕,
스카이라운지의 노래방이나 사색의 제일명소 해우소나 볼링장 등등, 해탈의 경지를
느끼며 나름대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눈은 잠을 먹이로 한다고 하지 않던가? 설악산 산신령님은 기침 한번
안하시고 잘도 주무시는데 나는 왜 이리 찬 겨울 하늘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래
옳다. 바로 매서운 바다 바람이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내일 아침은 부처님 말씀을
느낄 수 있는 태양이 빛날꺼야! 졸업 여행을 오기 전 동해의 일출을 꼭 보여주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하며 기다린 날이 아닌가? 비로자나부처님과의 여법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꽤나 걱정도 하였지만 이렇게 새벽 날씨가 귀를 에는
매서움에 그저 신이 났다.
새벽 5시 기상. 6시에 낙산사로 간다. 비로자나불을 뵈옵고 관세음 보살님을
뵈옵기 위해 서둘러 시원한 명태 무국으로 아침 공양을 마치고 낙산 바닷가에 당도하니
7시 10분경. 밀리는 파도에 쫓겨 서서히 어둠은 저만치 물러 가고 있었다.
만삭이 된 아내가 부득이 이번 여행에 청강생으로 함께 하게 되었다.
곧 태어날 아가 가연(좋은 인연)에게 비로자나불과 홍련암 관음굴의 관세음 보살님을
친견케 하기 위해 동행하게 되었다.
모든 도반들이 저마다의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 떠오를 태양을 기다리며
삼삼오오 이야기 꽃을 피운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무수한 파도가 오가고 갈매기의
날개짓이 몇번이었던가. 무엇인가 새악시 부끄러운 얼굴의 보드라움, 연분홍빛 참꽃의
떨림처럼 바알간 아름다움이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점점 저멀리 이어도가 보이고,
지평 너머의 LA의 빌딩 숲이 아른거리며 신기루를 이룬다. 저것이 구름인지? 잠깐
걱정하는 사이 어린 아이 혀 내밀 듯 붉음이 솟아오른다.
광명! 광명이다. 붉은 덩어리가 솟구쳐 오른다.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는다.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즈바라 프로바를타야 훔.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 옴 아모카 ...] 言語道斷!
바로 이것이야! 이것이 우리가 느끼는 소금 맛이야.
만삭이 된 아내와 태어날 아가의 건강과 경기불교대학 모든 도반들의 행복과
나의 제일 큰 서원 성불을 기원하며 크게, 크게 광명진언을 외쳤다.
날이 밝자 의상대로, 홍련암으로, 낙산사 돌담을 돌아 여러 문화재를
둘러보며 신흥사를 거쳐 맛있는 설악산 순두부로 늦은 점심 공양을 마치고 우리
도반들은 희희낙낙 즐거움에 수원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꿈결에나 다녀왔나 경기불교대학 1회 졸업여행. 꿈깨니 아쉽네.
- 이상은 '법보' 2543년 2월호에 게재된 권중서 거사님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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