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 金海金氏

   조상이 있었기 때문에 내 몸이 있다. 그러므로 조상을 알아서 조상을 숭배해야 한다. 조상을 알려하지 않는 사람은 짐승과 다를바가 없다. 조상의 벼슬만 들추는 것 또한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지만, 자기의 핏줄의 유래를 캐보려 않는자는 부모와 조상을 외면하는 자이다. 우리는 자기의 근원을 알아보려는 마음을 가짐으로서 조상에게 떳떳한 도리를 다하고 문화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출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인들은 최소한도 자기의 조상과 혈통을 알고 지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자는 껍데기 인간이요 주체성과 얼을 잃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조상을 아는 것은 오늘의 나를 정확하게 아는 길이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아는 것은 오늘의 우리를 옳바로 아는 길이기 때문이다.

-駕洛王孫 二千年史 서문에서-



駕洛國 始祖 金首露大王
金首露王
普州太后
가락국시조 김수로대왕
시조왕비 허황옥 보주태후



  김해김씨(金海金氏)는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 제위42~199년) 후손이다. 수로왕은 유덕하시어 하느님으로부터 대명을 받으시고 동한(東漢) 건무(建武) 년간에 하늘로부터 탄강하시어 김해에 서울을 정하시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시어 왕위를 전하기를 10세에 이르러 국통(國統)이 끊겼다. 시조 탄강 이후 김씨는 하늘이 아껴서 나누어주신 땅에 끊임없는 덕을 베풀어 그 여경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자자손손이 시조왕의 흥덕을 이어 받으니 지금도 해마다 동지에 이르면 왕릉은 깨끗이 청소되고 정성어린 향불을 능묘 앞에 피워 1천여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끊이지 않는다. 그 덕이 두텁지 않고서야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으리요...

-숭정(崇楨) 61년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선생이 지은 무신구보(戊申舊普) 서문에서-


  삼국유사에는 서기48년 가락국 수로대왕비 허황옥(許皇玉) 보주태후(普州太后) 께서 아유타국(아요디아王國)으로부터 동래(東來)하실때 불교를 전래하신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하동 쌍계사 칠불암(七佛庵) 전설은 다음과 같다.

  수로대왕의 넷째 아드님으로부터 열째 아드님까지 7명의 왕자가 허태후의 오빠 보옥선사(寶玉禪師)를 따라 가야산에 들어가 수도한 후 의령 수도산(修道山) 사천 와룡산(臥龍山) 등을 편력하고 다시 지리산에 올라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좌선(坐禪) 하기를 2년간 계속하던 중 수로대왕 62년 8월15일밤 선사는 7왕자를 데리고 달 구경을 하고 있었다. 한 분이 시(詩)를 읊기를 '푸른 하늘에 삼경(三更)달은 명랑하게 심담(心膽)을 비춰주네.' 하였다. 또 한 사람은 '달은 중추(仲秋)를 맞아 제대로 차고 바람은 8월에야 시원하다.' 하였다. 또 한사람은 지상(地上)에 일원상(一圓像)을 그렸다가 발로 뭉게버렸고, 4인은 머리만 숙이고 있는지라. 선사는 지팡이(柱杖子)로 힘껏 치니 7왕자는 함께 손뼉을 치고 크게 웃었다. 이후로 현지(玄旨)를 대철하여 모두 성각(成覺)하였다. 그리하여 혜진(慧眞)은 금왕광불(金王光佛), 각초(覺初)는 금왕당불(金王幢佛), 지감(智鑑)은 금왕상불(金王相佛), 등연(等演)은 금왕행불(金王行佛), 두무(杜武)는 금왕향불(金王香佛), 정홍(淨洪)은 금왕성불(金王性佛), 계장(戒莊)은 금왕공불(金王空佛)이 되었다. 이처럼 7왕자는 생불(生佛)이 되었다. 그래서 칠불암(七佛庵)을 창건하니 하동 쌍계사 북쪽 20리 되는 곳이다. 반야봉 남쪽 기슭에 한 도량(道場)을 개설하니 동국(東國)의 제일선원(第一禪院)이다.

신라 때는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가 정강왕(定康王)때에 와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수로왕께서 7왕자가 성도(成道)하였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태후와 함께 친히 행차하여 보시니 성불한 뒤이므로 어찌할 수 없었다. 암자 앞에 한 푸른 못이 있다. 이 못의 수면은 깨끗하여 거울과 같았다. 그런데 그때 성불한 7왕자의 모습이 완연히 못 가운데 비쳤다. 그래서 그 못 이름을 영지(影池)라고 불렀다. 지금도 영지는 남아있다. 그리하여 부왕께서 머무신 곳에 범왕사(梵王寺), 모후께서 머무신 곳에 천비사(天妃寺)를 세웠는데 범왕사는 지금의 범왕리(凡旺里) 에 있었고 천비사는 지금의 운수리내(雲水里內)의 대비부락이다. 신라 혜공왕때 담운선사(曇雲禪師)가 칠불암에 방(房)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아자(亞字)와 같아서 아자방이라 하였다. 방은 여러번 중수하여도 구들을 고치지 않았는데도 아래나 위나 고르게 따뜻하다. 선조 임진년에 부휴화상(浮休和尙)이 본원(本院)을 중수하고 융희1년 정미(丁未)에 병화로 탕실되고 4년 경술(庚戌)에 쌍계사에 제의하여 禪會를 열었다. 칠불암은 없어졌어도 아자방은 그대로 남아있다. 칠불암에는 그 사적을 기록한 철비가 있었으나 지금은 대석만 남아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칠불영정과 서기 375년에 만들었다는 약사여래상과 수병풍 등이 있었고 귀중한 서적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장유암(長遊庵)과 파사석탑 (婆娑石塔)도 일종의 불탑(佛塔)으로 허태후가 동래(東來)할때 불교(佛敎)가 들어왔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삼국시대 이전 불교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駕洛王孫 二千年史 중에서-



 
.김해김씨 감무공파 20세손 金在炫[一名 金起賢] 세보
.    -자료출처:金海金氏 監務公派 世譜에서-
 
1세
익경
益卿
2세

3세
진문
振門
4세






5세
응문
應文
응무
應武
응복
應福
 
6세
한성
漢城
한원
漢園
 
7세
사종
嗣宗
 
8세
극보
克補
극희
克禧
극조
克조
 
9세
 




 
10세
 
여문
汝汶
 
11세
 
세남
世南
세인
世仁
 
12세
 
명원
命源
명백
命佰
명복
命福
 
13세
 
시만
始萬
시경
始璟
 
14세
 
윤필
胤弼
윤홍
胤弘
윤달
胤達
 
15세
 
흥담
興談
 
16세
 
치득
致得
 
17세
 
두하
斗河
삼하
三河
 
18세
 
영태
永泰
 
19세
 
상록
相祿
상필
相弼
 
20세
 
재현(在炫)
生父相弼
재현(在炫)
出系伯父
용현
容炫
정현
正炫
 



김해김씨 사군파 항렬표(行列表)
監務公諱益卿派(감무공휘익경파) (사군파) 自監務公十七世로 起錫字라(감무공으로부터17세에 석자)
17세 18세 19세 20세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錫(석)○ ○泰(태) 相(상)○ ○炫(현) 在(재)○ ○鎬(호) 永(영)○ ○植(식) 炯(형)○ ○奎(규)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鎔(용)○ ○淳(순) 東(동)○ ○勳(훈) 重(중)○ ○會(회) 源(원)○ ○柱(주) 燦(찬)○ ○基(기)
37세 38세                
鍾(종)○ ○涉(섭)                
-자료출처:김해김씨선원대동세보(2001년 종로보)- 金海金氏璿源大同世譜(西紀2001年辛巳 鍾路譜)  
  항렬(行列)은 金水木火土의 相生之義하여, 定名者 例也라  



조부 : 김해김씨 감무공파 十八世
수평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祖父 : 김영태 金海金公 永泰

할 머 니 祖母 : 김공덕 金寧金氏 空德


할아버지2
할머니2
할아버지 [1891-1956(?)]
할머니 [1893-1970]


Lotus Lantern 부모님 父母님

Lotus Lantern 김재현 金在炫

Lotus Lantern 김기현 金起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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